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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슨노트/life stroy (일상끄적)

여자의 삶

by hehebubu 2016. 10. 3.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어떤 뜻으로 말하든 여성의 자기 성취에서는 가정에서의 성취가 제외된다는 점이다.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은 여성이 가장 오랫동안 해왔고 또 가장 효율성이 높은 분야인데도 대중적으로 자기 성취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뒷전으로 밀려버리고 만다. 지금껏 훌륭하게 자기 일을 해온 중년의 자랑스런 주부를 갑작스런 허망감과 무력감 속으로 밀어넣는 해괴한 논의이다.

 

그렇지만 애매함을 넘어 수상쩍은 느낌까지 주는 것은 이 시대가 다투어 권하는 자기 성취의 방식이다. 앞서 보았듯 너희 논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기의 일을 가져라. 자아를 되찾아라.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벗어나라. 가정에서 해방되라. 그런데 내게는 그런 권유들이 마치 자기 성취를 원하는 여성에게는 가정은 감옥이고 남편은 폭군이며 아이들은 족쇄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현모양처란 무능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고 내조와 양육은 허송세월의 동의어인 듯하다.

 

거기다가 더욱 수상쩍은 것은 그렇게 끌어낸 여성들을 이 시대가 몰아가는 곳이다. 어제까지도 성실한 주부로서 나름의 성취를 이뤄가고 있던 여성들이 그 애매하기 짝이 없는 자기 성취의 열정에 휘몰려 걷게 되는 길을 보라. 형편이 좋으면 느닷없이 서투른 예술가 흉내를 내거나 뒤늦게 가망 없는 학문으로 뛰어든다. 그렇지 못한 쪽은 난데없는 여류 사업가 또는 기능인의 꿈에 젖어 사기에 얹히거나 별 소득도 없는 일에 심신이 아울러 녹초가 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런 저런 단체가 좌판처럼 펼쳐놓은 싸구려 문화 강좌나 벌써 오래전부터 정원 미달인 하류 대학의 대학원에서 혼자 황홀한 몽상에 젖어 있는 사이에, 또는 연고 판매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조악한 상품의 외판원이 되어 친지들을 괴롭히고 다니거나 나이든 비숙련공으로 헐값에 노동력을 팔고 있는 사이에 가정은 뿌리째 흔들린다. 점심을 라면으로 때운 아이들은 갑작스레 늘어난 자유 시간을 만화 가게나 비디오 방에서 폭력과 음란부터 익힐 것이고, 남편은 썰렁하고 성의 없는 저녁 밥상머리에서 역시 아무 이룬 바 없이 늙어가는 자신을 새삼 우울하게 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는 요즈음 유행하는 여성의 자기 성취에 관한 논의에 영악하고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간계가 끼어들지 않았는지 솔직히 의심이 간다. 문화마저 상품화에 성공한 자본주의가 방대한 시장 개척을 위해 여성에게 걸고 있는 집단 최면이 바로 그 요란한 자기 성취의 논의는 아닐는지. 또는 그들의 논리로 보면 가정에 사장되어 있는 값싼 노동력을 거리로 끌어내기 위해 창안해 낸 효과적인 구호가 바로 그 여성의 자기 성취는 아닌지.

 

- 이문열, '선택(1997)' 中 -

 

"신여성이 뭔데?"

"신여성은 서울만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거란다. 신여성이 되면 머리도 엄마처럼 이렇게 쪽을 찌는 대신 히사시까미로 빗어야 하고, 옷도 종아리가 나오는 까만 통치마를 입고 뾰죽구두 신고 한도바꾸 들고 다닌단다."

나는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것에 실망했다. 내가 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긴 머리꼬리에 금박을 한 다홍 댕기를 드리고 싶었고 같은 빛깔의 꼬리치마를 버선코가 보일락 말락 하게 길게 입고 그 위에 자주 고름이 달린 노랑 저고리를 받쳐 입고 꽃신을 신고 싶었다.

"신여성은 뭐 하는 건데?"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란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나는 신여성의 겉모양을 그려보았을 때보다도 더 크게 실망했다. 신여성이 그렇게 시시한 걸 하는 건 줄 처음 알았다. 그러나 그걸 안 하겠다고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 박완서, '엄마의 말뚝(1980)' 中 -

 

그리하여 나도 결국엔 소위 신(新)여성이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를 나와 떡하니 공무원 한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말이다. 그 결과,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하고 있는가? 안주인으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길렀던 구(舊)여성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는가? 여성들은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는가? 그 대답은 단연코 '아니오'다. 하루에 8시간씩 컴퓨터 작업을 하는 통에 건강이 손상되고 남자 직원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받아내는 성적 노리개일 뿐이다. 여성해방운동은 가정주부의 역할을 훼손하고 여성들을 일터로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여성에게 행복과 만족감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았던 동서양의 오랜 법과 제도는 차별이 아닌 보호였다.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바르게 의식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여성들 가운데도 여성 해방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적지 않은 기독교인 여성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여성들의 대열에 합류해왔다.

 

디도서 2장 5절은 "집안일을 하며"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내와 어머니들의 가장 중요한 일터가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젊은 과부들에게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집을 다스리라고 권고한다(딤전5:14참고). 잠언 31장 역시 이상적인 아내이자 어머니를 현숙한 여인으로 간주한다. 가정은 현숙한 여성의 일터이다. 성경은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이 남자들에게 있고(딤전5:8참고), 가정을 보살피는 책임이 여성들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집안일을 하라"라는 디도서 2장의 명령은 디모데전서 5장 14절의 말씀을 통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집을 다스리고"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는 매우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 이 말은 가정의 통치자이자 군주, 또는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즉,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가정의 운영자가 된다는 것, 곧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무를 온전히 맡아서 한다는 뜻이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그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졌다. 그녀는 남편을 돕고, 자녀들을 돌보고, 허드렛일을 하고, 종들을 감독하고, 밭을 관리하고, 돈을 투자하고, 상품을 사고 팔았다. 잠언 31장의 아내는 가정사 전반을 관장했다.
 

가정을 "다스리라"는 명령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 첫째, 이 명령은 남편의 권위를 빼앗아도 좋다는 허가장이 아니다. 아내는 가장인 남편의 지도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가정을 운영해야 한다. 둘째, 이 명령은 요즘 유행하는 풍조인 '집안일에 대한 부부 공동책임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정을 운영하는 것은 아내의 일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와 똑같이 집안일을 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편에게 정당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가 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므로 남편들을 집안일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운영할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그런 임무를 부여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소명은 짐이 아니라 큰 만족감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다.

 

성경은 가정의 운영자가 해야 할 일을 놀랍도록 간단하게 명시한다. 즉, 아내는 남편의 돕는 배필이다(창1:26-31, 2:7-25; 고전11:8,9 참고). 더글라스 윌슨은 이렇게 설명한다.

 

"남편에게는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내는 남편을 도와야 한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동반자가 되어 다스리는 일을 감당하도록 계획하셨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문화적 소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남편 혼자서는 이 소명을 감당할 수 없다. 남편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남편은 소명을 부여받았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헌신함으로써 그 소명에 이바지해야 한다. 남편은 소명을 지향하고, 아내는 남편을 지향해야 한다."

 

디도서 2장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사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집안일을 함으로써' 불신자들의 눈에 복음을 매력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우리의 가정은 복음을 보여주기 위한 진열장과 같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가정 주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거나 우리의 노력으로 일군 가정생활이 탁월하고도 뛰어난 것을 보고서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우리의 비결을 알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가정은 엄청난 사역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가정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보살필 수 있는 전략적인 발판이나 다름없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은 "나는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가장 위대한 전략 기지 가운데 하나가 가정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아내 에디스 쉐퍼를 지켜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쉐퍼 부인의 둥근 계피빵이 쉐퍼 박사의 설교로 주님께로 인도된 사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다."


 

- 캐롤린 매허니, '여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2013)' 中 -

 

모세는 신명기에서 장장 30장에 걸친 설교를 한 뒤 이렇게 끝을 맺었다.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네가 지키면 반드시 흥할 것이요 어기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은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므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女(여자)'가 '宀(집)'에 있는 것이 '安'이요, '女(여자)'가 '宀(집)'에 있지 '不(아니)'한 것이 '不安'이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20161003 written by Her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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