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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슨노트/sermon note (설교노트)

[오륜교회] 고개 숙인 당신의 영혼을 위하여

by hehebubu 2015. 3. 1.

모세의 사촌인 고라는 광야에서 르우벤 자손인 다단, 아비람, 온과 무리를 짓고 족장 250명을 동원하여 모세의 지도권에 도전하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은 땅이 갈라져 죽임당하고 250명은 하나님의 불에 태워져 죽임당했다.

하지만 그의 세 아들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후대에 성전 문지기, 찬송하는 자, 빵을 굽는 성전 요리사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시편에는 고라 자손들의 시가 여러 편 소개된다.

그로부터 약 1,000년 후, 바빌론의 강력한 왕 네부카드네자르는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유대 성전을 파괴했다.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잡혀갔는데, 이 시기를 바빌론 유수라고 부른다.

[시편 42-43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도다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저자가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이유
①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사람들의 조롱
② ​하나님께 잊히고 버림받은 기분
③​ 포로로 잡혀와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

* 이런 가운데 저자가 취한 행동
① ​자신의 영혼을 향해 외침
② ​소망을 하나님께 둠
③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

​# 고난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어떤 언니가 CCC(한국대학생선교회)를 두고 그러더라. 여기 남자들은 어쩜 하나같이 못생기고 키도 작고 옷도 못 입고 집안도 가난하냐?

내게는 정기적으로 모이는 친한 (여자)친구들 두 그룹이 있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그룹은 영동일고 동창들로, 3명 모두 종교가 없는데도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고 애인도 있고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다른 그룹은 성균관대 동기들로, 3명 모두 크리스천인데도 얼굴이 다소 밋밋(?)하고 솔로인 데다가 수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객관적인 시각을 위해 나는 제외)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 역사하시는가? 그렇다면 세상에서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역설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은 멸시를 당한다. 나도 그랬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선교까지 다녀온 독실한 너인데 왜 갑상선을 치료해주지 않으시냐. 왜 공무원 시험을 단번에 합격시켜주지 않으시냐. 왜 결혼의 반대를 해결해주지 않으시냐. 전지전능하신 거 맞느냐. 혹시 안 하시는 게 아니라 못 하시는 것 아니냐. 기적을 보면 나도 믿겠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때론 분노가 일었다. 감히 이것들이 상천하지의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해? 우리 하나님은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거든? 얼마나 벌을 받으려고 그런 소릴 지껄이나.

때론 원망이 들었다. 제가 잘 되어야지 친지들이 그걸 보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 아니에요. 이건 제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거라니까요.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데 전도가 되겠냐고요.

때론 주눅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날 버리신 건 아닌가.

사실 이것은 5,000년 인류 역사 내내 있어온 의문이다. 욥도, 다윗도, 요나도, 하박국도, 오늘 본문의 저자인 고라의 자손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음녀의 땅 바빌론으로 하여금 신부의 땅 이스라엘을 짓밟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방인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두실 겁니까.

세상의 성공을 좇아 믿음을 저버린 사람도 있지만 우리의 영적 조상들은 끝내 믿음을 지켰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나타나 도우실 것을 믿었다. 포로들을 귀환시키실 것을 믿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거래'가 아닌 '신앙'을 배웠다. '때문에(for)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가 아니라 '오히려(yet)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순도 100%짜리 정금!

# 주일성수 꼭 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주전에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토요일에 아무 일도 안 하고 쉬었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기쁨의 축제를 벌인다.

나는 예배에 대해서만큼은 내 잔이 차고 넘치게 많이 마셔두었다는 교만한 생각에 수험 준비와 동시에 예배를 관둔 적이 있다. 그러나 1년 만에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다시 예배를 찾았다.

내 몸은 '탱크'가 아니라 '펌프'였던 것이다.

# 애국계몽 vs 무장투쟁 vs 친일?

우리 한민족과 유대민족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오랜 기간 나라를 빼앗긴 아픔이 있다는 거다.

일제 치하 우리 민족 항일독립운동의 노선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실력양성론과 무장투쟁론. 물론 친일노선도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어떤 노선을 걸어야 했을까? 성경을 통해 유추해보자.

B.C.605년, 오랫동안 섬겨온 이집트가 바빌로니아와의 전쟁에서 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왕에게 바빌론 왕을 섬길 것을 권면함으로써 매국노요 거짓 선지자라는 오해를 받아 대적들로부터 심신의 압박은 물론 투옥당하고 살해 위협을 받기까지 했다. 얼마 후 그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그때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를 후대하여 유대에 머물도록 하였다.

B.C.458년, 페르시아 왕 아르닥크세르크세스 1세의 허락으로 귀환한 ​에스라는 무엇보다 율법 교육에 힘을 쏟기로 결심하고, 백성에게 율법을 낭독하며 설명도 해주었다. 또한 그는 유월절 및 초막절을 준수하고,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에 대한 정결 작업을 감행하여 회복된 유다 땅 안에서 철저히 거룩과 경건이 유지되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그는 구약성경을 취집하고 회당을 창설하는 등의 일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C.171년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는 이집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지배한 뒤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며 돼지 피로 제사를 드리게 하고 할례를 금하는 등 온갖 이방 제도를 법제화하였다. 이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오자 B.C.168년 ​맛다디아와 그의 아들들은 혁명을 일으켜 20년간 시리아에 저항하며 백성을 구원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레미야는 친일, ​에스라는 실력양성, ​맛다디아는 무장투쟁 정도 되겠다. 하나님께서 시기에 따라 다르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맛다디아는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으므로 무장투쟁은 성경적인 노선이 아닐 수도 있겠고.

오늘은 제96주년 3.1절이고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목자 예수님만 쫑쫑쫑쫑 따라가는 양의 해 되길.

written by Her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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